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
서울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작가, 프랑스 문학의 살아 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 독학으로 한글을 깨칠 정도로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지닌 그가 쓴 《빛나 – 서울 하늘 아래》은 외국 작가가
썼다는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친숙하고 정교하게 서울, 서울사람, 서울풍경을 그려낸다. 바로 지금 여기, 서울 하늘 밑에서 벌어지는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르 클레지오는 2001년 첫 한국 방문
이후 수차례에 걸쳐 한국을 오갔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년간
석좌교수로 지내면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흥미와 애정을 느꼈다. 그는 서울이 최선과 최악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최첨단 시설과 고층건물이 최악이라면, 최선은
번화가 뒤에 숨은 좁은 뒷골목과 한적한 언덕길, 단아하면서도 기품서린 북악산과 나지막한 야산들, 북한산과 그 산자락에 자리한 작은 카페들이다. 그는 늘 서울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쓰겠노라 말했는데, 바로 이 작품 빛나 – 서울 하늘 아래》이다.
하나의 주요 테마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이야기가 엮인 액자소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인생과 관계성의 드라마
이 소설의 주인공 빛나는 대학에 갓 입학한 열아홉 살 전라도 어촌 출신 소녀이다. 르
클레지오와 마찬가지로 소녀는 거대도시 서울이 낯설고 복잡하고 외롭다. 빛나는 우연히 불치병을 앓는 여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집 안에 갇힌 채 죽음을 기다리는 살로메는 빛나와 함께 그의
이야기 속으로 상상 여행을 떠난다.
빛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모두 다섯 편이다. 한국전쟁으로
북에 있는 고향을 떠난 조 씨와 비둘기 이야기, 신비로운 메신저 키티가 전해주는 쪽지를 통해 이웃 간
연대와 관계성을 회복하는 이야기, 버려진 아이 나오미와 그녀를 품고 살아가는 한나가 또 다른 생명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 아이돌 스타가 되지만 탐욕과 거짓말에 희생당하는 가수 나비 이야기, 그리고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빛나가 느끼는 일상의 공포와 도시에서의 삶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에는 작가가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한국의 전통, 종교, 역사, 세대 갈등, 남북문제, 정치 사회 문제, 음식 등 다양한 주제들이 녹아 있다.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신촌과 이대입구의 골목길, 방배동의 서래마을, 강남, 오류동, 용산, 홍대, 당산동, 오류동, 과천의 동물원, 충무로, 종로, 명동, 영등포, 여의도, 인사동, 안국동, 경복궁, 창덕궁, 청계천, 북한산, 남산, 잠실, 한강…. 작가의 시선은 서울의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그가 다닌 동네들, 그가 만난 사람들, 그가 들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작품 안에 녹여 그만의 서울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빛나의 이야기들은 어느 순간 서로서로 연결된다. 현실이든 상상이든, 실제로 일어난 일이든 지어낸 것이든 간에, 이 이야기들은 우리 자신
혹은 이웃의 이야기, 더 나아가 서울 하늘 아래 서로 연결된 우리 이야기가 된다.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소설
서울은 위대한 소설을 얻게 되었다
《빛나》에서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한가운데 존재하는 이웃 간의 따뜻한 인간애가 정겹고 소박한 언어로 표현된다. 작가가 항상 특별하게
생각했던 한국인 특유의 ‘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 〈옮긴이의 말〉 중에서
르 클레지오는 거대도시 서울의 다양한 인간 군상과 도시 풍경을 묘사하고 낱낱의 이야기들을 연결하면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따뜻한 인간애를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묘사한다.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도 슬프다. 도시 구석구석에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있는 절망과 슬픔, 소외와
좌절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이야기에 목말라 하는 여인,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빛나의
이야기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삶을 지키고 살아내려는 굳센 용기를 읽는다. 저 세상을 향해
영혼이 날아가기 전까지는, 소리도 지르고 몸을 떨기도 하면서 완강하게 저항하며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작가는 절망과 좌절을 통해 생은 더욱 빛나고, 미래는 희망차다고
말한다. 르 클레지오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와 용기이다.
한글판 및 영문판 동시 출간, 전 세계에
서울을 알리다
이번 소설은 한글판 《빛나 – 서울 하늘 아래》와 함께 영문판 《Bitna: Under the Sky of Seoul》으로도 동시 출간되었다. 제주
우도를 배경으로 한 르 클레지오의 소설 《폭풍우》와 더불어, 이 두 작품을 통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이 한국의 매력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J. M. G.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
“새로운 시작과 시적인 모험 및 감각적인 황홀경을 표현하며 지배하는 문명 안팎을 넘어
인류애를 탐험하는 작가”로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는 ‘현대 프랑스 문단의 살아 있는
신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일컬어진다.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으며, 프랑스와 모리셔스 이중국적을 지니고 있다. 1963년 스물 셋의
나이에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면서 혜성처럼 문단에 등장했다. 1980년 《사막》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대상을 수상했고, 《황금 물고기》, 《우연》, 《폭풍우》 등을 비롯하여 40여 권의 작품을 펴냈다.
2001년 대산문화재단과 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한 한불작가 교류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한국을 방문했다. 2007~2008년 이화여대에서 석좌교수로
강의했고, 2011년 제주 명예도민으로 위촉되었다.
역자 소개
송기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파리제3대학교에서 불문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광기, 본성인가 마성인가》, 《스크린 위의 소설들》, 공저로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역사의 글쓰기》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르 클레지오의 《폭풍우》,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 콜레트의 《여명》 등이 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목차
빛나 서울 하늘 아래
옮긴이의 말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연보
책 속에서
마치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사람들 이름과 만난 장소를
적는다. 하지만 다시 만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서울은
너무 커서 수백만 번 같은 길을 걷는다 해도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언젠가는 서울 하늘 밑에서 다시 만나리>라고 다짐해도
말이다.
-16쪽
비둘기가 지나간 곳의 이름을 말하자 살로메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녀는
지그시 눈을 감고, 한 쌍의 비둘기와 함께 하늘로 날아갔다. 이
길에서 저 길로 돌아다녔고, 한강에서 부는 바람을 느꼈으며, 자동차와
트럭과 버스가 뒤섞인 소리도 들었다. 끼-익 소리를 내며
신촌역 역사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기차의 쇠바퀴 소리도 들었다.
-38쪽
잘 들어봐요, 바람이 바다에서 불어와요. 부드러운
아침 바람이에요. 얼굴에 바람을 느껴 봐요, 살로메. 당신은 하늘 높이, 북쪽을 향해,
저쪽 세상의 강기슭을 향해 날아가고 있어요. 흑룡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다른 비둘기들과 함께 하는 당신의 마지막 여행이에요. 바람은
당신을 취하게 하고, 당신 눈을 멀게 하고, 당신 숨을 가쁘게
하지요. 하지만 당신은 계속 날고 있어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똑바로 날아갈 거예요. 두 팔을 벌리고 온몸으로 바람을 느껴 봐요. 당신은
이제 하나도 무겁지 않아요. 바람에 흩날리는 새털처럼, 나뭇잎처럼, 꽃잎처럼 가벼워요.
-133쪽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190쪽
나는 서울의 하늘 밑을 걷는다. 구름은 천천히 흐른다. 강남에는 비가 내리고, 인천 쪽에는 태양이 빛난다. 비를 뚫고 북한산이 북쪽에서 거인처럼 떠오른다. 이 도시에서 나는
혼자다.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237쪽
|